우리의 사랑은 언제 불행해질까

🔖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보다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 행동하는 것이 상식적인 것이다, 내 감정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지는 것이 상식적인 것이고, 나이가 들었으니 나이답게 행동하는 게 상식적인 것이고, 작은 일로 크게 상처받는 것은 비상식적인 것이다, 섹스 후 잠깐 돌아누웠다고 갑자기 우는 것은 매우 비상식적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아야 했고, 느꼈다 하더라도 표현하지 않고 곰곰이 묵혀 두었다 감정이 다 소화되었을 때 "사실은 내가 그때 그랬다"라면서 나의 감정과 생각을 조곤조곤 설명해 주는 게 어른스럽고 상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나는 엉엉 울며 소리를 질렀다. "돌아눕지 마! 돌아눕지 말라고!"

(...)

나의 감정은 거칠고 통제하기 어려웠다. 내 안의 맹수 같은 것이 나를 추하게 만들었다. 비이성적이고 부끄러운 말들을 내뱉고 꽥꽥 소리지르고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자기밖에 모르고 사랑할 줄도 모르면서 사랑받고만 싶어 하는 모습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나조차 너무 싫은데. 나는 솔직하기보다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눕지 말라고 소리 지른 순간부터 이미 수습할 수 없었다. 이제 글러먹은 것이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나는 와작와작 깨지고 있었다.

우리는 내가 무너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함께 지켜봤다.

깨진 마음을 벗어던진 나는 알몸으로 세상에 서 있었다. 그 앞에 네가 있었다. 놀라고 당황스럽고 미안한 얼굴로 나를 안으며 어디에도 가지 않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이 관계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걸. 어떤 표정을 지어도 상관없다는 걸.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로 소리 지르며 울어버려도 안아줄 사람이 있는 삶이 시작되었다는 걸.

깨진 마음과, 상식적인 기준들과, 어른스러우려 애써 노력했던 시간들을 다시 걸쳐 입지 않고 방을 나왔다. 아마 나는 그날 다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 "우리는 너무 달라! 우리를 연결해주는 게 뭐야?" 라고 물어볼 것이다. 어쩌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 날이면 '사실 이런 사람과 연애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은 날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덧칠해도 서로의 색으로 물들지 않는 사람들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낯선 광경에 놀랄 것이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는다면, 새삼스러움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네 속의 낯선 것들이 여전히 낯선 채로 익숙해지고 있었다.


🔖 연인은 서로 상처를 주고받기로 약속한 사이다. 서로에게 생채기를 낼 정도로 가까이 있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안심하며 사랑할 수 있다. 크고 작은 상처들을 내고 아문 자리가 엉겨 붙으며 가까워지는지도 모른다. 나로 인해 상처받는 너를 사랑한다. 눈물을 글성이는 너를 보니 웃음이 날 것 같다. 내가 눈물을 닦아주면 너는 또 나에게 안길 것이다. 너의 상처는 나의 사랑으로 다시 치유될 것이다. 그러니 몇 번이고 나 때문에 울게 되기를.


🔖 우리는 아무 이야기나 서로에게 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낯 뜨거운 욕심이나 남들이 들었다면 재수 없다고 혀를 찼을 생각, 별로 재미 없지만 꼭 하고 싶은 농담 같은 것을 얼마든지 들어준다. 네가 소철 화분에 물을 많이 줘 죽인 것에 두고두고 죄책감을 느낀다는 건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지만 나는 알고 싶다. 내가 어제저녁 고양이 키우는 꿈을 꿨다는 건 누구도 알 필요 없지만 그게 어떤 고양이었는지 너에게는 말해줄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아니었다면 무심히 흘려보냈을 삶의 사소한 조각들을 발견하고 있다.